리디북스 정산 금액 조정 사건 정리
전자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리디북스의 이번 사건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첫 번째로,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출판사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이미지 하락이 있었고,
두 번째로, 전반적인 전자책 산업의 민낯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일단 이번 사건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리디북스, 정산 금액 조정 일방 통보 - 헬게이트 오픈
2016년 11월 25일 오후 6시 30분경.
리디북스는 출판사들에게 일방적인 계약 변경에 대한 공지를 발송했습니다.
공문의 내용을 다 공유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기존에 판매가의 70%를 정산해줬지만,
앞으로는 판매가격의 7%를 제비용으로 계산, 공제하고 나머지를 지급하겠다.
2017년 1월 1일 이후 계약이 갱신되는 출판사들은 앞으로 제비용을 제외한 금액을 정산해줄 건데,
만약 2016년 12월 16일까지 계약을 변경해서 갱신하면 7%를 반으로 할인한 3.5%로 완화해서 적용해주겠다.
더도 덜도 없이 위 사항이 공문의 내용이었습니다.
뭐... 출판사 입장에서는 업계 1위 업체가 한 달 뒤부터 돈을 조금 줄테니까 그렇게 알라.
라고 통보한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이 부분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첫 번째, 공문의 발송 시점.
금요일 오후 6시 30분입니다.
뭐, 잦은 야근을 하는 출판사의 특성 상, 그 시간까지도 많은 담당자가 잔업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9시 출근하는 회사라면 6시 퇴근을 하겠죠.
9시 30분 출근이라면 6시 30분 퇴근이고요.
아마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9시~9시 30분에 퇴근을 하니까, 공문은 출판사의 전자책 담당자가 퇴근한 시점에 발송이 된 겁니다.
물론, 리디북스는 오전 10시 출근 오후 7시 퇴근이니 아직 한창 업무 중인 시간이죠.
그래도 출판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주말 잘 쉬고 월요일 오전에 출근해서 무방비 중에 '정산받는 금액의 조정'이라는 펀치를 맞은 격입니다.
출판사 담당자들이 리디북스의 예상치도 못한 공격에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잘못은 마치 선심 쓰듯 "그래도 12월 16일까지 계약 갱신하면 7%를 감하는 것이 아니라 3.5%만 감해줄게."라는 조건입니다.
출판사는 자신들이 받아가는 정산 금액이 조금이라도 많기를 바랄 겁니다.
그렇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조기 계약을 하는 출판사들도 있었겠죠.
이런 리디북스의 모습은 업계 1위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출판사를 길들이려는 시도 같다.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2. 리디북스의 추가 안내 - 보이지 않는 위험
2016년 12월 1일 목요일 오전 11시경.
리디북스는 또 한 통의 메일을 발송합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뭇 출판사들의 항의와 문의가 쏟아졌을 겁니다.
난데없이 정산 금액 조정이라는 통보를 받은 출판사 담당자들이 참지 못하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을 상황이 눈에 선하네요.
많은 출판사들의 문의와 항의에 리디북스는 처음에 보냈던 공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추가 안내를 합니다.
먼저 왜 이런 공문을 발송했는지에 대한 변명설명을 합니다.
비용이 수반되는 마케팅 활동을 강화 시행할 예정이다 - 쿠폰/상품권을 확대하겠다.
계약 갱신은 강제가 아니라 '희망하는 출판사'에 한해 진행한다.
제안에 동의하여 계약 갱신을 하면 '강화된 마케팅 요소'를 적용하겠다.
제안에 협조하면 재계약이 아니고, '정산 기준'만 변경된 수정 계약이 진행된다.
12월 16일까지 조기 협조 시에는 7%가 아닌 3.5%를 제비용으로 감하고, 이는 앞으로 갱신되는 계약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 서점에서 다양한 마케팅 요소를 이용하여 콘텐츠를 더 팔게 해주기 위해 제안을 했다.
제안은 '필수 사항이 아니다'. 동의는 '출판사에서 결정'하라.
제안에 동의하지 않아도 지금 진행되는 마케팅은 동일하게 진행된다.
다만 "내년부터 신규로 확대되는 마케팅 요소"는 적용되지 않는다.
저는 이 메일의 내용을 읽고서, 말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분명 첫 번째 메일에는 '출판사 결정'이라는 문장이 없었는데 추가되었죠.
첫 번째 메일을 읽고서 '통보'라고 생각했는데, 리디북스 측에서도 이에 대해 자신들의 강제성을 느낀 건지 출판사 자율에 맡긴다는...
마치 며칠 전 대국민 담화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뭐, 3일 동안 출판사들의 대대적인 문의와 항의를 받았으니 방향을 수정할 수야 있겠죠.
하지만 결정적인 패착은 "12월 16일까지 조기 계약 이행시 할인."이라는 사항을 끝까지 안고 갔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결국 리디북스의 말을 듣는 것이 출판사 너희들에게 이로울 거야.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킬러 콘텐츠가 없는 중소 출판사들, 혹은 1인 출판사들이야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갱신하겠지만,
킬러 콘텐츠를 가진 만화 출판사, 혹은 대형 출판사들이 리디북스의 의도대로 움직여줄 지는 미지수입니다.
충분한 힘을 가진 출판사들은 오히려 리디북스에 콘텐츠 제공을 하지 않겠다고 보이콧하는 방법도 있거든요.
출판계에서는 킬러 콘텐츠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서점이라고 해도 잘 팔리는 책을 제 때 들이지 못하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리디북스는 출판사에 휘둘릴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업계 1위인데 가장 핫한 전자책을 구입할 수 없다면? 앞으로도 해당 출판사에서 리디북스를 보이콧한다면?
리디북스의 콘텐츠 수급 담당자가 그 압박을 버틸 수 있을까요?
오히려 출판사에 콘텐츠를 얻기 위해 MG를 제안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제 추측...ㄷㄷ)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내년부터 신규로 확대되는 마케팅 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출판사는 실루엣도 보이지 않는 매출 증대 이벤트만 보고 정산 금액을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거죠.
여튼 이 두 번째 메일이 출판사들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고 생각합니다.
3. 한국출판인회의와 출판사들의 보이콧 - 출판사의 역습
12월 5일. 리디북스의 공문에 대한 '한국출판인회의'의 공식 입장이 발표되었습니다.
리디북스의 일방적 공급률 인하 통보에 대한 한국출판인회의 입장
지난 11월 25일, 리디북스가 전자책 공급 출판사에 2017년 1월 1일부터 공급률을 인하한다는 일방적 통보에 대해 한국출판인회의 전자출판 정책 실무위원회는 긴급회의를 갖고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힙니다.
우리 단체는 2010년 전자출판 원년의 해로 선언하고 지금까지 저자, 출판사, 유통업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전자책 시장질서 확립을 통한 건강한 전자출판 생태계 조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리디북스가 마케팅 비용을 출판사에 전가하는 일방적 공급률 조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자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횡포이며, 출판사를 협력적 파트너로 보지 않고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무엇보다 현행 전자책 공급률은 전자책 사업 초기부터 출판계와 유통업계가 합의하고 지켜온 합리적인 기준선으로 그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것입니다.
또한, 일방적 통보에 더 나가 조기 계약사에게는 ‘제비용 항목 3.5%로 완화’와 ‘재계약을 한 출판사에 한해서 마케팅 강화’라는 조건으로 출판사를 가지고 노는 듯한 꼼수는 입도선매하듯 줄서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전자책 서점 1위 업체인 리디북스가 공식적으로 취한 행동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로 인해 전자출판 유통 체계를 혼란시키며, 더 나아가 저작자의 안정적인 저작 활동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서정가제의 안착으로 종이책 시장에서는 출판·유통업계 상생을 위해 긍정적으로 공급률을 인상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한국출판인회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공급률 인하 행위를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출판계와 유통업계가 미래의 전자출판산업 발전을 위해 상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엄중히 촉구합니다.
-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와 입장을 밝힌다.
1. 리디북스는 우리 단체의 뜻에 참여한 출판사를 개별 접촉하여 불합리한 재계약을 유도하지 않는다.
2. 일방적 통보에 대한 철회 공문을 12월 12일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안내하길 바란다.
3.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리디북스는 출판계와 파트너십 관계를 폐기하는 것으로 보고 2차 논의 후 행동으로 나서겠다.
2016년 12월 5일
발췌했습니다.
출판사들과 함께 리디북스의 일방적인 통보를 보이콧하겠다는 것이죠.
많은 출판사들이 참여한 공식 입장이었기 때문에 리디북스의 다음 대응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4. 리디북스의 공문 철회 - 상처만 남은 사고
12월 6일 오후 7시 20분경.
리디북스는 2016년 11월 25일에 발송한 공문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는 이미 계약을 변경한 출판사와 진행 중인 출판사들에게도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한국출판인회의와 출판사들의 보이콧에 백기투항한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제 보이콧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이런 모습으로 정리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상당히 빠른 대처였습니다.
더 이상 이미지에 손상을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겠죠.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많은 출판사들이 리디북스를 쳐다보는 눈이 전과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게 정산 금액, 즉 공급률은 엄청 중요한 문제기 때문입니다.
누군들 자기 밥그릇이 줄어든다는데 좋아할리 없겠지요.
최근 리디북스에 악재가 이어졌습니다.
며칠 전에는 구직자 면접 건 때문에 리디북스 대표님이 사과문을 올리는 일도 있었죠.
젊은 기업, 전자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리디북스에 잇따른 악재가 아쉽기만 하네요.
이번 사건 역시, 너무 성급하고 미숙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존에 리디북스가 했던 방법 대로, 출판사들을 모아서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했다면, 비록 결과는 같을지 몰라도 지금과 같은 이미지 실추는 없었을 텐데요.
기존에 출판사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고, 출판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모습을 떠올리면 한없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리디북스에게 큰 상처를 줬고, 출판사에게도 리디북스에 대한 불신을 심어줬을 겁니다.
앞으로 두 집단은 전과 같은 모습으로 갈 수는 없겠죠.
제가 얼마 전에 리디북스의 재무제표를 봤는데, 영업 적자가 꽤 크더라구요.
어쩌면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이번 사건과 같은 문제가 터지지 않았나 생각도 드는데,
개인의 생각일 뿐이니까 그냥 이 녀석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정도로만 이해해주세요.
현재 전자책 업계는 파이에 비해 경쟁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제 살 깍아먹기 같은 경쟁을 하고 있죠.
출판사는 좀 더 저렴한 장르소설을 찍어내는 경우도 있고, 작가들은 매번 비슷한 류의 글을 만들어 냅니다.
서점은 경쟁사에 밀릴 수 없어서 할인 쿠폰과 포인트를 뿌리며 고객을 붙잡고 있죠.
과도한 출혈 경쟁은 결국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걱정되네요.
어쨌든 업계 1위의 좋지 않은 일로 기분이 꿀꿀한 밤이네요.
부디 전자책 업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성장통이었기를 바라며 긴 글을 마무리합니다.
#리디북스 #정산금액